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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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덕우지길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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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 관리부서 : 산청군 문화관광과/서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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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덕계 오건(吳健,1521∼1574)과 그의 아들 오장(吳長), 오장의 스승 오한(吳한)의 문집책판으로, 모두 132매이다.
개요
오건 덕계문집 목판, 오장 사호집 목판, 오한 수오당문집 목판 (吳健 德溪文集 木板, 吳長 思湖集 木板, 吳僩 守五堂文集 木板)
덕계 오건(吳健,1521∼1574)과 그의 아들 오장(吳長), 오장의 스승 오한(吳한)의 문집책판으로, 모두 132매이다.
오건은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한때 퇴계 이황에게서 공부를 배웠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움막을 짓고 3년간 묘를 지켰으며, 그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 상을 받기도 했다. 명종 13년(1558)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을 거쳐 선조 4년(1571)에 이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해『명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몰두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덕계선생문집』10권 5책은 순조 17년(1817)에 간행된 것이다.
『사호집』은 오장의 시문집으로 8권 4책으로 되어있다. 이 책은 강세황이 서문을 달고, 정지검이 발문을 쓴 것으로 보아 정조 6년(1782)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수호당실기』는 오한의 전기를 기록한 실기로서, 그 8대손인 오응규가 고종 1년(1864)에 간행한 것이다.
[전문설명]
덕계선생문집 책판의 이 문집은 덕계 오건(吳健)(1521∼1574)의 문집책판이다. 오건의 자(字)는 자강(子强), 호(號)는 덕계(德溪)이며, 관향(貫鄕)은 함양(咸陽)이다. 그는 남명문인(南冥文人)이며 한때 퇴계(退溪)문하에서도 글을 읽었다. 명종 4년(1549)에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하여 그 효성이 예조(禮曺)에 알려져 포상되었다. 명종 7년(1522)에 진사가 되고 명종 13년(1558)에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거쳐 선조 4년(1571)에 이조좌랑(吏曺佐郞)으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館)을 겸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만년(晩年)에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몰두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 시문집(時文集) 10권 5책은 순조(純祖) 17년(1817)에 간행되었다. 사호집 책판은 오건의 아들 오장(吳長)의 시문집이 사호집인데, 8권 4책이다. 이 책은 강세황(姜世晃)의 서문(序文)과 정지검(鄭志儉)의 발문(拔文)으로 미루어 볼 때 정조 6년(1782)경에 간행된 것이다. 첫 서문은 숙종 44년(1718)에 강현(姜현)이 썼지만 당시 곧 간행하지 못하고 63년이 지난 1781년에 그의 아들인 표암 강세황이 아버지가 지은 서문을 자필로 써서 간행하였다. 수호당실기 책판의 "수호당실기"는 오장의 스승이었던 오한(吳한)의 전기를 기록한 실기인데 1864년에 그 8대손인 오응규(吳應奎)가 간행하였다.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구분 | 지정번호 | 지정일 | 제작연대 |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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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문화재 | 163호 | 조선시대 |